국제 금융 시장에서 통용되는 돈은 달러입니다. 미국이 가장 믿을만한 국가라 그 국가의 화폐인 달러로 돈이 오가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제 금융 시장에서는 다양한 국가와 기업이 달러로 돈을 빌리게 됩니다.
① 달러 표시 부채, 왜 무서운가?
달러로 돈을 빌린 국가, 기업은 국내로 들어와 그 돈을 그 국가의 화폐로 바꿔서 투자를 합니다. 그래서 돈을 벌면 다시 달러로 바꿔서 돈을 갚습니다. 환율 변동에 따라 빌린 돈은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합니다.
1,000달러를 빌렸다고 합시다. 환율은 1달러 = 1,000원입니다. 그럼 나는 1,000달러를 1,000,000원으로 바꿔 투자를 합니다. 1년 뒤 10% 이자와 함께 1,100달러를 갚기로 했습니다. 환율 변동이 없다면 1,100,000원을 달러로 바꿔 1,100달러를 갚으면 됩니다. 그러나 환율이 변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 1달러 = 800원 / 1,100달러 = 880,000원
- 1달러 = 900원 / 1,100달러 = 990,000원
- 1달러 = 1,000원 / 1,100달러 = 1,100,000원
- 1달러 = 1,100원 / 1,100달러 = 1,210,000원
- 1달러 = 1,200원 / 1,100달러 = 1,320,000원
같은 돈을 빌렸는데 환율에 따라 갚아야 할 돈이 이렇게 달라집니다. 물론 내가 사업을 달러로 하면 상관이 없습니다. 달러로 벌어서 달러로 갚으면 되니까요. 그러나 미국 외 국가는 보통 자국에서 사업을 하기 때문에 환율 변동에 영향을 받습니다.
1,000달러를 빌려 1,100달러를 갚아야 할 때, 1,000원이었던 환율이 1,200원이 되면 갚아야 할 돈이 220,000원이 늘어납니다. 이게 1,000달러가 아니라 1,000만 달러라면 어떨까요? 갚아야 할 돈이 22억 원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달러 표시 부채가 환율 변동과 만나면 무섭습니다.
② 달러 채권의 주기적인 양털 깎기 전략
이런 효과를 통해 달러를 빌려주는 사람은 성장하는 국가의 부를 주기적으로 흡수했습니다. 선진국은 성장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장하는 국가의 부를 달러 부채를 통해 얻었습니다.
새롭게 성장하는 국가는 늘 돈이 필요합니다. 국내에서 해결하면 가장 좋겠지만, 금융 시장 역시 발달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외화 자본을 끌어드립니다. 이런 단계에서는 금리도 내려 낮은 이자에 달러를 빌려줍니다.
신흥국은 그 돈을 통해 성장합니다. 그래서 일정 수준으로 양털이 자라면, 달러 채권의 주인들은 작업을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금리를 올립니다. 금리를 올리는 이유는 역사마다 다양했습니다. 어쨌든 금리를 올리며 시장에 풀었던 달러의 공급을 줄입니다. 그럼 달러의 가치가 귀해지면서 달러가 비싸집니다.
달러가 저렴할 때 낮은 이자에 달러를 빌려온 신흥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갚아야 할 시기는 다가오는데, 자국 화폐를 달러로 바꾸려니 달러 값이 올라 전보다 훨씬 큰 금액을 갚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실상 국가가 성장하며 얻을 수익의 많은 부분을 달러 채권자에게 내어주게 됩니다. 이를 달러 채권의 주기적인 양털 깎기 전략이라 부릅니다.
환율과 금리로 보는 앞으로 3년 경제전쟁의 미래라는 책을 참고하면 더 자세히 이 전략을 알 수 있습니다.
③ 레고 랜드 사태에 엎친 흥국 생명
보험 업계 8위 기업인 흥국 생명이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 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결국 금융 당국과 협의해 이번 콜옵션은 행사하기로 했지만, 레고 랜드 사태와 마찬가지로 외국 자본의 한국 기업에 대한 신용 문제로 번질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 신종자본증권 : 돈을 빌리는 계약은 늘 언제까지 갚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를 돈을 빌리는 계약을 채권, 돈 갚을 기한을 만기라고 합니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없거나 30년 등 아주 긴 채권을 말합니다. 갚기 전까지는 이자를 냅니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길다 보니 보통 콜옵션이라는 조건이 붙습니다.
- 콜 옵션 : 콜 옵션은 내가 빌린 돈을 갚을 권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채권을 다시 살 권리입니다. 돈 갚을 기간이 많이 남았어도 중간에 빌린 돈을 다시 사들이는 방식으로 돈을 갚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만기가 긴 채권을 살 사람이 없으니 콜 옵션 조건을 걸어 돈을 빌립니다. 돈 빌려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액면 상 30년 만기 채권이지만, 5년 뒤에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 쉽게 돈을 빌려주게 됩니다.
근데 ‘콜 옵션 행사로 5년 만에 돈을 갚는 룰’을 흥국 생명에서 연장하겠다 발표했습니다. 돈을 갚지 않겠다는 건 아닙니다. 2017년 빌린 채권의 2022년 5년 콜옵션 행사를 6개월 미루겠다 한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 사이에서 돈 갚을 능력을 의심하거나 신종자본증권 5년 약속 더 이상 못 믿겠다는 심리가 피어납니다. 그래서 레고 랜드 사태 때문에 안 그래도 한국 채권 인기가 떨어졌는데, 이번 일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른 회사는 더 돈 구하기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흥국 생명이 빌린 돈이 달러 표시 부채였습니다. 상황도 비슷합니다.
- 2017년 저금리 기조가 강할 때 달러를 풀어 많이 빌려줬습니다.
- 현재 금리 인상을 하고 있고, 달러가 귀해집니다.
- 환율도 2017년에 비하면 1,000원 대에서 1,400원 대로 올랐습니다.
위의 사례와 비슷하죠? 어쩌면 지금도 달러 채권의 양털 깎기 중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기관이나 원화 표시 부채를 낸 보험 회사는 콜옵션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달러로 빚을 낸 흥국 생명은 이 부채가 기존보다 훨씬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국제 정세에 맞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금융 당국이 이 사태를 지혜롭게 해결하길 바라겠습니다.